월 스트리트(Wall Street, 1987)는 단순한 금융 영화가 아니다.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가를 배경으로,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 이면에 숨겨진 윤리적 갈등, 도덕적 타락, 그리고 선택의 책임을 강하게 조명하는 시대의 고전이다. 고든 게코라는 전설적 캐릭터는 “Greed is good(탐욕은 선이다)”라는 명대사로 자본주의의 민낯을 요약했고, 주인공 버드 폭스는 그 유혹 속에서 성장과 추락을 동시에 경험한다. 이 영화는 부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. ‘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’가 아니라, ‘무엇을 잃고 부자가 되는가’라는 물음이다.
욕망: 고든 게코, 유혹의 화신
고든 게코(마이클 더글라스 분)는 단순한 주식 투자자가 아니다.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. 이 캐릭터는 똑똑하고 매력적이며, 말을 할 때마다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매혹적으로 들린다. “탐욕은 선이다”라는 대사는 단순한 자극적 표현이 아니라,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를 압축한 선언이다. 주인공 버드 폭스는 이 유혹에 빠져들고, 그의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돈과 성공이 인생의 최우선 가치가 된다. 영화는 그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주며, 욕망이 어떻게 윤리를 마비시키고 인간을 도구화하는지를 드러낸다. 게코는 영웅도 악당도 아닌,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다.
현실: 성공 뒤에 놓인 균열
버드는 초반에는 이상적인 청년이다. 그러나 부와 명예를 좇기 위해 내부 정보를 거래하며 게코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. 처음에는 짜릿하다. 연봉은 수직 상승하고, 럭셔리한 삶과 사회적 지위가 따라온다. 하지만 이 영화는 ‘빠르게 얻은 부’의 현실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허상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. 버드는 점점 자신의 중심을 잃고, 게코의 본색—공장 노동자들을 해고해 주가를 올리는 냉혈한 투자 전략—에 충격을 받는다. 이 장면은 부의 이면, 자본의 차가운 현실을 상징한다. 모든 투자 뒤에는 ‘사람’이 있고, 그 결정은 수많은 현실적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관객에게 일깨운다.
선택: 돈이 아닌, 사람을 남기는 길
영화 후반부, 버드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택의 책임을 진다.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, 윤리적 고민을 통해 마침내 ‘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’를 스스로 결정한다. 이 장면에서 영화는 비로소 경제 영화가 아닌 ‘인생 영화’가 된다. 선택은 단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,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결정짓는 순간이다. 게코는 끝까지 자기 논리를 고수하지만, 버드는 거기서 빠져나온다. 이 결말은 단순히 정의가 승리한다는 교훈이 아니라,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‘돈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.
월 스트리트는 198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,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다. 오히려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. 부를 향한 욕망이 정당화되고, 윤리보다 결과가 중시되는 지금, 우리는 얼마나 게코화되고 있는가? 이 영화는 부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‘가야 할 방향’이 아니라 ‘놓쳐선 안 될 기준’을 제시한다. 부자 되는 법을 말하는 영화는 많지만, 부를 얻는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가치를 말해주는 영화는 드물다. 월 스트리트는 그 드문 영화 중 하나다.